이창수의 붕어이야기 마지막화. 전라북도 고창을 찾은 이창수, 봄을 시기하는 듯이 갑자기 찾아온 추위 앞에 봄 붕어와의 마지막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봄 마중을 하러 전라북도 정읍을 찾은 이창수 따듯한 낮기운에 오늘은 월척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고 낚시를 해보는데… 따듯한 바람만큼이나 반가운 봄 붕어 마중을 할 수 있을까?
‘입춘’ ‘입춘’...하고 소리내보면 무슨 향기가 나는 것 같지 않나요?
꽃향기인가요? 붕어향기인가요?
걱정스러운 기후변동 속에서도
이렇게 때맞춰 찾아와주는 겨울이 얼마나 고마운가요
알고 보면 숨은 매력도 엄청 많은 게 겨울이라
오늘 난 그 매력 속에 푹 빠져 있네요
얼지 않은 소류지 하나가 날 위해 기다리듯이
온통 절망뿐인 것 같은 세상 그 어디에
날 위한 희망 하나가 자라고 있음을 겨울꾼들은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낚시할 때가 가장 나답고 즐겁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자주 대 드리우는 일 말고 또 무엇이 소중할까요?
오늘 문득 붕어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숱한 인생의 겨울이 있었지만
따뜻한 너희들이 있어 잘 참아낼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덜렁, 달력 한 장...
붕어의 향기만 좇아 살았는데 어느새 여기까지 와버렸네요
한 해를 돌아보면 내일 죽을 것처럼 낚시를 떠나며 살았지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수초가 있는 풍경 속에 앉아있었던가요?
빛나는 보석 같은 나의 영웅들 덕분에
내 마음은 풍선을 달고 언제나 마법의 성 위를 날아다녔죠
휘날리는 잎새들을 보며
헤엄치는 물고기 같다고 생각하셨다면
당신은 참 멋진 만추의 꾼입니다
가을이 떠나며 남긴 말은.... 이 한 가지뿐입니다
“네 속에 그리움 남았거든 다 불태워 버려라”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깊어가는 가을 물가에 앉아 물어 보십시오
가진 게 가장 많은 사람이..... 누구인지 말입니다
가을이 깊어 녀석들 생각이 간절해졌을까요?
녀석들 생각이 간절해서 가을이 깊어졌을까요?
낚시가 행복한 도망이라면
아, 얼마나 도망치기 좋은 계절인가요?
모든 것 등 뒤에 던져두고 남쪽으로 튈 때의 그 기분을 당신도 아시잖아요?
날개를 가진 새들이 부럽나요?
괜찮습니다
당신에겐 낚싯대가 있잖아요
그건 인생에 마법을 걸어주거든요
다리가 떨리기 전에 가슴 떨리면 무조건 떠나야지요
앉아서 상상만 하기엔 세상이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죽을 만큼 더운 것’과, ‘죽을 만큼 그리운 것’은 서로 견줄 수 있을까요?
폭염의 대한민국은 당신이 진정한 ‘꾼’인지 물어옵니다
‘그냥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질러야 한다는 것’...........
그것이 사막을 건너는 방법이지요
누가 불타는 저 태양을 멈추게 할 수 있나요?
누가 내리는 저 비를 멈추게 할 수 있나요?
바람처럼 떠나고 싶은 꾼의 숙명을, 누가 멈추게 할 수 있나요?
지진처럼 나를 흔드는 그리움의 정체를 알고 싶을 때,
간절하게 두 손 모으고 무엇인가를 기다려보고 싶을 때,
그 때가 바로 당신이 개망초꽃 어우러진 강 가로 나갈 때입니다
어디라 없이 문득 길 떠나고픈 마음이 있지요
누구라 없이 울컥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지요
추억 속에서 인간은 가장 부유하지 않나요?
바람결에 꽃향기 대신 뜨거운 열기가 묻어옵니다
봄을 추억하기보다는 새로운 계절을 영접해야 하겠지요
일 년 내내 단 한 번도 물이 빠지지 않는
그리움이란 이름의 호수 하나를 품고 사는 사람들이... ‘꾼’입니다
꽃들, 새들, 나무들, 별들...
저들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그 현장에서 아름다움을 채집하는 사람들이 ‘꾼’입니다
꽃이 다 지기 전에 지금 낚시를 떠나자!
내일 죽을 것처럼 ....
나는 봄의 심장부를 향해, 던지고 또 던지고 바라보았습니다.
저 봄이 나의 소유가 될 때까지.....
담 위에 제 마음을 다 늘어뜨린 개나리처럼
4월이면 단단히 바람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비처럼 날아가버릴 순간들을 포착해서 채집하는 사람들--바로 ‘4월의 꾼’들이지요
두 발 부르트도록 꽃길 걷고 연분홍 언덕 넘은 거기가 우리들의 천국입니다
진달래가 피는 까닭은, 너를 기다리는 내 마음이, 너무 붉기 때문이란다